싸이코 패시 (psychopathy), 싸이코 패스 (psychopath)

 

공공의 적, 검은 집, 우리 동네, 추격자. 지난 해부터 한국 영화의 단골소재로 등장하는 싸이코패스. 극악무도한 살인을 일삼고도 일말의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절대 악으로 그려지던 싸이코 패스. 과연 악마의 환생인가. 단순한 정신질환자인가.

 

싸이코패스, 지독한 나르시스트

 

사이코패스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한다. 이들의 삶은 다른 사람이 비용을 대는 자기만족 게임에 불과하다. '비용'이 경우에 따라선 다른 사람의 목숨이 될 수도 있다.
                                                             
- 로버트 헤어 <진단명 사이코패스>

 

1920년대 독일학자 슈나이더에 의해 발정, 광신, 자기현시, 의지결여, 폭발적 성격, 무기력 등 10가지 특징의 인격 유형의 증상을 싸이코 패시라 명명하고 이러한 증상을 가진 반사회적 성격장애자를 싸이코패스라 규정했다.

 

"그들은 나쁜 짓에 대한 후회가 없다. 감정적으로 냉담하고 무관심하다. 자신을 마치 신처럼 대단한 존재로 평가한다."                                                        - 스톤 박사

 

그들의 핵심적인 특징은 타인의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거나 무디다는 것이다. 이는 알면서도 모르는 채 묵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판단하는 능력 자체가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 밑의 그림에서 표정이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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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의 경우 울고 있는 사진과 웃고 있는 사진의 확연한 감정 차이를 느낄 수 있지만 타인의 감정을 모르는 싸이코 패스는 당연히 구분하기 힘들다.

 

당신도 싸이코패스일 수 있다.

 

“전체 인구의 1%, 성폭행범의 40%, 연쇄살인범의 90%.

 

그들의 타인에 대한 무감함은 폭력성과 공격성과 함께 극단적인 범죄로 재현되게 된다. 이는 유전적으로 사이코패스의 뇌 일부에서 인지적 결함과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 기능의 문제가 폭력성을 부른다고 본다. 한 실험에서 전두엽을 제거한 쥐와 정상쥐를 함께 가둬 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정상쥐는 전두엽이 제거된 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러한 유전적 폭력성이 잠재된 인간이 폭력에 노출된 환경에 자란다면 그가 희대의 살인마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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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싸이코패스로 이야기되는 히틀러가 그린 그림()과 유영철이 그린 그림()>

 

싸이코패스는 범죄라는 형태로 발현될 때에만 알 수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평범한 사람이 사실 싸이코패스일 수도 있다. 실제로 유명 심리학자이자 싸이코패스 연구로 명성 높은 로버트 헤어 박사는 인류의 1%는 싸이코패스로 태어난다고 보았다. , 태어나는 100명의 1명은 싸이코패쓰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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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는23년간 동네에서 인자하기 소문이 자자했던 의사였던 해롤드 쉽만은 214명에게 약물을 투여해 그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보고 희열을 느끼던 연쇄 살인범이었고 미국을 30년간 공포에 떨게 만든 BTK (Bind묶고, Torture고문하고, and Kill죽이다) 사건의 주인공은 보수적인 교회의 장로이자 구청직원이면서 이웃들의 부탁을 잘 들어주던 착한 이였다.

 

그들의 범죄 사실이 발각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들이 과연 타인의 감정 따위 전혀 의식치 못하고 살아가는 싸이코패스일거라 생각조차 했겠는가.



이렇듯 겉보기에는 너무 평범한 당신 옆의 친구가 혹은 당신이 사실 싸이코패스 일지도 모른다.




 

* 싸이코패스일지도 모를 당신을 위한, 사이코 패스를 판별해내는 진단 기준 *

로버트 R. Hare의 PCL-R(Psychopathy CheckList-Revised) 척도

[3점 척도(아니다-0, 조금 그렇다-1, 매우 그렇다-2), 20문항, 40점 만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기보고식 설문 형태가 아니라, 전문적인 훈련 과정을 거친 자에 의한 관찰 및 인터뷰, 생활 기록 조사 등을 통해 점수가 기록됩니다.

40점 만점 중 30점 이상의 경우(북미의 경우) 사이코패스로 판정합니다.]


                                                    전혀아니다 0 / 조금그렇다1 / 그렇다2


1.
말 잘하는 것을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2. 자기의 가치에 대해 자랑하고 다닌다.

3.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

4. 속임수를 경멸하거나 극단적으로 싫어한다.

5. 범죄를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6. 감동적인 것을 봐도 감동인지 모른다.

7. 매사에 냉담하고 남이 말하는 것에 공감하지 않는다.

8. 책임감이 없거나 부족하다.

9. 일상 생활에서 많은 정신적 자극이 필요하고 지루함이 많다.

10. 기생충처럼 남에게 빌붙어 산다.

11. 나쁜 행동을 자제할 능력이 부족하다.

12. 소년비행을 경험하거나 영유아기 때 잔인한 짓을 많이 하였다.

13. 현실성이 부족한 목표를 길게 끌며, 그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14. 매사에 충동적이다.

15. 무책임하다.

16. 소년비행.

17. 약속을 잘 깬다.

18. 아무데서나 성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19. 많고 짧은 연애를 한다.

20. 범죄적인 재능이 타고났거나, 재능을 범죄에 이용하려고 한다

 

 

 


청춘을 잃어버린 청춘들에게 고함  - 4.19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2008년 촛불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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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의 주목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관심과 반성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혁명은 어디 그 뿐이겠는가. 그럼에도 그 혁명을 선명히 기억하는 이는 흔치 않다. 지금은 이제 케케묵은 역사속의 이야기로 흘러 보낼 뿐. 그리고 그 혁명들 속의 청춘들은 이제 연로하여 그저 하나의 미담으로 웃으며 얘기할 뿐이다.

 

"5.18이야 알기는 알지. 근데 그땐 나도 몰랐어. 그때 내가 기아자동차에서 일을 했거든. 나중에 보니까 내가 만든 차가 광주에 들어가는 군용차량이라 하더라고. 친구가 그때 군대에 있어서 걔가 나중에 말하는 거 듣고 알았지. 이야기만 들었지. 아예 접근도 못했는데 뭐. 나중에 보니까 공수부대니 일반 사병이니 전부다 차출 되서 광주로 갔다고 하더라고. 지금 전국에서 전경들 다 올라와 있는 거랑 똑같지. 근데 나도 잘 모르겠어. 뭐가 사실이고 뭐가 거짓말인지. 눈으로 봤어야 알지, 얘기 들어서 어떻게 알겠어.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라는 것만 기억하지. 나도 젊은 사람들이랑 똑 같은 거지."

 

"그래도 내가 4.19는 잘 알지. 그 때 이기붕이랑 같은 동네에 살았어. 나는 고등학생이었거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하는 짓은 거의 폭도랑 비슷했지. 무법천지였으니까. 고관들이고 부자고 그 사람들 집에 들어가서 쓸만한 거 다 들고 나오고. 경찰은 전혀 통제를 못했어.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해. 대학생들보다 고등학생들이 합류하면 더 심해졌지. 사실 재밌었거든. 태어나서 그런 일은 처음이었으니까. 길거리에 그렇게 망나니마냥 뛰어다니는 게 재밌었지. 얼마나 신기했겠어. 어른들은 우리보고 잘 한다 잘한다 그러니까 마치 우리가 영웅이 된 것도 같았고. 어렸으니까 충동적으로 최루탄 같은 거 무섭기보다는 거기 내가 맞서서 싸운다는 사실이 더 좋았으니까 무서운 것도 몰랐지. 대통령도 안 무서웠는데 뭐가 무서운 게 있었겠어. 쫓겨도 어린 애였으니까 어른들이 도와도 주고, 대학생들이 싸워도 주고. 그땐 내가 엄청 정의로워 보였지. 역사를 바꿀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그냥 한 거지. 결과는 아무도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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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예순 다섯의 정씨 할아버지는 가족과 함께하는 가벼운 술자리에서 자신이 기억하는 혁명에 대해 입을 여셨다. 그리 길지 않는 대한민국의 역사, 그 속의 무수한 혁명들이 있었고 그 산 증인으로 그는 해묵은 서랍을 꺼내 말씀하신 것이다. 그는 독재의 역사 대신 민주주의 시작의 역사를 연 그 무수한 장본인들 중 한 명 이셨다.

 

"뿌듯하지, 뿌듯하기는. 근데 너무 빨리 민주화가 된 거 같아서 좀 그래. 원래 민주화가 되고 나면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변한 건 하나도 없고 있는 자들은 여전히 잘 살고. 또 민주화 운동했다는 것들도 잘 살고. 빈곤층은 뭐 여전히 죽을 맛이고. 지금 봐. 민주세력이라고 했던 것들도 다 부정부패 하잖아. 그래도 요즘 젊은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볼 순 없지. 그건 정부의 책임 인거야. 대통령 됐다고 여당 됐다고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그게 문제지. 한참 좋을 시기에 맨날 직장 못 구해서 걱정이나 하게 만든 게 누군데? 그게 다 위에서 잘못한 거지. 그래도 어린 애들이 나와서 옳은 소리도 하잖아. 그 애들을 믿어야지. 믿다 보면 결과는 또 모르는 거야."

 

이번 광우병 쇠고기 사태에 많은 언론들은 20대들의 참여가 없다고 하여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냈었다. 그러나 정씨 할아버지는 20대들에게 잘못을 묻지 않았다. 그들이 비겁하거나 무지해서가 아니라고 되려 20대를 격려했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우리는 20대이고 행동보다 앞선 이성보다는 움직일 줄 아는 감성이 좀 더 어울리는, 어른들의 세계에선 허무맹랑한 이상을 꿈꾸고 그를 실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세대이다. 그런 우리에게 정씨 할아버지가 주는 격려는 결코 지금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때의 청춘들은 과연 먹고 살기가 편했는가. 그래서 그들은 그 혁명속에 서 있을 수 있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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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20대들은 자신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의심하고 포기하면서도 누군가 이 세상을 바꿔 주길 기대한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왜 우리는 마치 모든 걸 다 아는 척 구는가. 미리부터 속단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현실을 불평하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결국 자신들이 꿈이란 것도 망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꿈꿔 본 20대라면 행동해라. 그리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그 결과를 기다려보자. 결코 헛되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정씨 할아버지의 믿음처럼.

성난 이화인들, 그러나 그들은 더 뜨거워져야 한다.

 

2008 6 2일 고공농성이 한참 진행중인 이화여대 정문에서는 5 31일 교내 폭력사태 규탄과 이배용 총장과 이명박 정권 퇴진을 위한 총학생회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2월부터 시작한 교육투쟁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 있겠지만 5 31일 내조의 리더쉽이라는 어이없는 명목으로 현 영부인에게 자랑스런 이화인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벌어진 교내 경찰 투입으로 인한 폭력사태가 발생 이후 갖는 첫 기자회견이었다. 20분 가량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는 이배용 총장에게 이번 폭력 사태와 관련해 총체적인 책임을 묻고 학내 교육투쟁을 넘어 반민중적인 이명박 정권에 대한 반대투쟁을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것임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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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학생들 왜 학생들은 총장님을 만날 수 없는 거죠?’

학생처장 약속을 지키시면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대 학생들 학생들이 경찰에 밀쳐졌을 때 선생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학생처장 막았습니다. 여러분은 학교를 생각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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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이 끝나고 이화여대 본관 총장실로 성명서를 전달하기 위해 자리를 옮긴 학생들은 총장실 입구에서 기다리던 학교 관계자들에 의해 출입을 저지 당했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회에서 고공농성과 천막 투쟁 등 일련의 교육 투쟁을 정리하면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만날 수 없다 라며 총장실 출입을 통제했다. 이에 학생들은 자신들은 그러한 약속을 한 적이 없었고 그것은 일방적인 통보였다며 분노를 표했다. 무엇보다 폭력 사태가 일던 당시 학교 관계자들이 학생들을 보호 하지 않았다는 것에 격노하였고 그 과정에서 단식 20일째를 맞던 총학생회장이 탈진 해 쓰러졌다.


 

이화인들, 좀더 뜨거워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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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기자회견 당시 이화인 50명 가량이 정문부근에 서서 그 기자회견을 지켜보았지만 본관으로 향할 때에는 고작 스무명을 넘지 않았다. 정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는 대부분 냉랭한 시선으로 지나치기 일쑤였다. 이후 총학생회장이 쓰러졌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진 덕인지 본관 앞은 다시 학생들로 채워졌고 덕분에 총학생회장을 강제로 데려가려던 학교측의 이대 목동 구급차를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총장과의 만남도 몇 달 째 성사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은 앞으로의 이화가 헤쳐 나가야 할 길이 순탄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매일 밤 모이는 촛불집회에서의 몇 만명도 이명박 정부를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시점에서 겨우 50여명의 이화인들로 어떻게 지금의 상황을 역전시킬 것 인가. 무엇보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나라 전체가 혼란스러운 시점에서 그러한 이화인들의 소극적인 참여는 자칫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

 

물론 이날 기자회견을 위해 모여든 기자들이 입 모아 말하길 이화인 참 무섭네였다. 이는 본관 총장실의 굳게 닫힌 문 앞에서의 화난 이화인들이 격렬한 언쟁과 남자인 학교 관계자들과의 몸싸움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원했던 총장과의 만남은 끝끝내 이뤄지지 못했고 이날도 여지껏 그러했듯이 학생회의 의견만 반복해서 피력하는 미완의 기자회견으로 끝나고 말았다. 결국 아직은 총장을 대화를 끌어낼만한 위력의 활동을 이화인들이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총장을 적극적으로 대화로 이끌고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이화인들의 화는 스스로 좀더 뜨거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아직 제대로 끓어 넘치지 않았으니 말이다.